[고객과의 대화 228] 하멜과 조선 - 정보 차단의 결과 작성일Date: 2025-02-19 09:4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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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객과의 대화 No.228
2025.02.19

스무 네 살 하멜은 낯선 땅에 표류해서가 아니라,
들어온 사람은 나갈 수 없다는 조선의 방침 때문에 절망했습니다.
조선은 36명이나 되는 이방인을 먹이고 감시하는 게 부담이었지만,
그들의 출경(出境)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. 그들은 조선에서 단지 죽어지는 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.
- 1628년 : 네덜란드인 벨테브레(귀화명 박연) 제주에 표류
- 1641년 : 일본 에도막부, 네덜란드간 제한적이지만 우호적인 통상 실시
- 1653년 8월 16일 : 네덜란드인 하멜 등 36명 제주에 표류
- 1653년 10월 29일 : 발테브레와 하멜 면담
벨테브레에게 면담내용을 보고받은 효종이 하멜에게 전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.
" 그대가 새라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, 우리는 외국인을 밖으로
보내지 않는다.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 줄 테니
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 "

일본은 하멜이 조선에 표류하기 전부터 네덜란드와 제한적이지만 통상관계에 있었고,
일본이 조선에 남아있는 네덜란드인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.
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일본에는 네덜란드 학습열풍(난학, 蘭學)이 불었고,
이는 향후 일본의 근대화의 초석이 됩니다.
이와 반대로 조선은 정보를 외부와 교환하지 않고 차단하기에 급급했습니다.
이 차단의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.
기업도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.
오늘날 기업의 외부 환경은 과거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합니다.
화상회의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총 동원하고
적절하게 운용하는 노하우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.
참조 : [하멜표류기](김태진옮김, 서해문집), [효종과 하멜](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)
Gorinchem , ‘Bezoek het Hendrick Hamel Museum – Wie was Hendrick Hamel?”, TRAVEL4HISTORY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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